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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역사박물관

햇빛은 없는데, 땀은 금방 흐르기 시작한다. 공기가 습기를, 습기가 열기를 머금고 서울을 꽉 채운 날씨였다. 둔해진 몸뚱아리가 한층 더 부끄러워지는 여름, 숙대입구에 내렸다. 식민지 역사 박물관을 가기 위해서였다. 관광지도 아닌 숙대 입구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건물. 주변은 모두 하숙집이나 밥집, 작은 카폐들이었다. 전형적인 대학 주변의 풍경. 관광객이라도 이런 곳까지 오는 사람은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며 봐도 다들 학생이나 그곳에서 장사 하는 사람들 처럼 보였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직원분이 리플릿을 주면서, 2층이 상설 전시관이라고 했다. 2층에 올라가 조금 둘러보고 있자니, 일본어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일본인이었다. 4인 가족인 모양으로, 딸 둘과 부모님인 것 같았다. 뜻밖이었다. 이곳을 찾는 일본인이 있구나. 일본인이라면 한국인이 반일 교육을 받는다고 알고 있고 그것에 반감을 가진다는 이미지가 사실 먼저 떠올랐다. 국립중앙박물관이라면 모를까 '식민지 역사 박물관'이다. 그 곳에 오는 일본인 관광객이 있다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보고 싶었지만,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하긴... 한국인이 옆에 있는데 그게 어떤 이야기든 신경이 쓰일 것이다. 기묘했다. 식민의 역사를 기록한 곳에 한국인 1명과 일본인 4명이 조용히 걸어다니고 있었다.

일본 분들도 더러 오시냐는 내 질문에 직원분이 대답하시길, 더러 수준이 아니라 많이 오세요. 한다. 일본에서 그 박물관을 향해 가는 패키지 여행도 있고 그냥 가족 여행 중에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식민 지배의 역사를 제대로 교육받을 수 없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공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놀랐다. 나는 제국주의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오키나와에 대만까지 찾아다니면서도 이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이번에 알았는데... 물론 일본인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직원 입에서 '더러 수준이 아니라, 많이 오신다' 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많이 오신다는 뜻이리라. 어쩌면 한국인보다도. 내가 다 보고 나올 때까지, 다른 한국인 손님은 없었다. 평일이라서 그런 거겠지만, 글쎄, 한국인이 서울에 놀러 온다고 그곳에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어쩌면 가장 봐야 할 사람들이 많이 와서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알려고 하는 의지와 행동은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린 항상 찬양할 것 혹은 비난할 것을 찾는다. 둘다 나의 위치는 고정한 채, 어떤 것들을 나에 비해 아래인가 위인가 하는 것들을 따지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그럴 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배우고, 이해하려고 애쓰는 순간일 것이다. 일본인들이 그 전시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까지 발걸음을 옮긴다는 자체에 나 스스로는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다. 나도 배우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되겠다. 배우는 도중에는 뭔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법이다. 판단하지 않은 채 계속 호기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그러니 많은 것들을 빨리 판단하고 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배우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를 생각하면 용기가 생긴다.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남들이 뭐라 하던 나는 뭔가를 배우고 뭔가를 만들자. 평가하고 판단하고 화를 내는 일은 하지 말자. 나의 일이 아니다. 감정이 생길 수는 있다. 배우고 만드는 동안에도 여러 감정을 마주할 수 있다. 오히려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평가나 판단에서 오는 감정과, 뭔가를 배우거나 만들면서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전자가 편해지기 위해 쉽게 쏟아내는 감정이라면, 후자는 무언가를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한 생산적인 감정이다. 항상 배우는 사람이자 만드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