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래 틀어박혀 있었다. 집 안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잠깐 나들이를 했었는데도, 고갤 들어 보면 금방 며칠이 지나 있었다. 이래선 안 된다. 성격 버린다. 무작정 카메라와 맥북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햇빛이 따가웠다. 6월 중순. 여름이 드디어 힘자랑을 하기 시작할 모양이다.
나오고 나서야 갈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려고 했던 영화는 다음 주 개봉이었다. 가려고 했던 전시는 휴관이었다.
이렇게 갈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 늘 생각나는 장소가 몇 있다. 그 중 하나가 경희궁 근처에 있는 에무시네마다. 실제로 영화를 본 건 한 번 뿐이던가. 한번도 안 봤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에게 이 곳은 카페다. 이름은 시네마이지만 카페와 스튜디오 같은 걸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운영하는 사람은 천성이 느긋하던가, 아니면 느긋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이리라.
처음 이 장소를 알게 된 기억은 선명하다. 한여름이었고, 독서 토론을 위한 책들을 골랐던 날이다. '햇빛 아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라는 대만 소설이었다. 그 책을 들고 언덕을 올라, 이 카페로 왔다. 머리카락이 햇빛을 흡수하여 두피까지 뜨거웠다. 빛 때문이든 땀 때문이든 눈을 크게 뜨기가 어려운 날이었다. 카페에 들어서는데, 천국에 온 거 같았다. 에어컨 바람과 냉수가 안팎으로 몸을 빠르게 식혀주었다.
커피였나, 맥주였나.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주문을 하고 뒤뜰이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연두색 빛이 밖에서 쏟아져 들어온다. 햇빛이 뒤뜰 숲의 나뭇잎을 때리고 반사되어 실내를 비추는 것이었다. 그 공간에서 대만 작가의 소설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걸 보면, 나는 그때 참 행복했었던 모양이다. 아마 지금보다 해맑았을 것이고, 그만큼 나이브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보다 나라는 사람을 더 좋아했었지 않았을까.
오늘 다시 이 곳에 와서 그때의 감정을 돌이켜 보니, 내가 많이 지쳤구나 싶다. 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왠지 여기에 와서 커피를 놓고 랩탑을 펼치는 내 동작이 사무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에 마비된 사람 처럼 무표정했다.
그때 옆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간 이유는, 햇빛에 맥주잔이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대낮에 500cc 맥주잔을 들고 여름의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 사람과 내가 알게 될 일은 없겠지. 하고 생각했다.
아마 많이 지쳐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부터 떠오르는 걸 보면. 시선을 돌려 창문 바깥을 멍하니 쳐다본다. 처음 여기 왔을 때를 떠올린다. 뒤뜰로 통하는 문 앞에는 나무로 된 데크가 있다. 햇빛에 의해 바싹 마른 나무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햇빛을 쐬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이런 날씨에 이런 곳에서 책을 읽는데, 메뉴에 맥주가 있다면 당연히 시켜야 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옆 자리 그녀를 보고 내가 저 사람과는 말이 통할 것 같다. 아마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한 이유는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멋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했던 행동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게 6년 전 일이었다. 그 6년 간 나는 맥주는 될 수 있으면 마셔선 안 되는 사람이 되었고, 불특정한 여러 희망보다는 하나의 가시밭길 같은 꿈을 쫓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주제에 집에 틀어박혀 밤마다 소주잔을 비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려고 선택을 한 게 아니다. 지금 이런 잡생각이 든다는 것은 내가 충분히 몰입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리라. 혼자 하는 작업, 처음 해보는 작업에 적정 속도의 측정 같은 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이 도와준 것일까. 내 비관적인 생각의 꼬리를 고양이가 물고 당기는 거 같았다. 거짓말이다. 나는 그렇게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 그냥 엄살 부리고 있는 거야.
다시 그 날의 내 눈으로 바라봐 보자. 그날의 나는 도망치기 바빴다. 꿈이 아니라 꿈이 될 수도 있는 생각들, 낭만들에만 빠져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몰랐다.
그에 비해 지금의 나는 어떤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 비해서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명확하며, 집에서 나 혼자 시간들을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이건 사실 내가 꿈꾸던 상황이었는데.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절망할 수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하고자 하면 그런 건 아주 쉽다. 그냥 울적한 기분에 휩싸여 스스로를 뭔가 불쌍한 상황에 처한 비련의 주인공인 것처럼 보려는 습관인 것이다. 아주 못된 습관이다. 고개를 홰 홰 저은 뒤, 시원한 커피를 주문했다.